안녕하세요. 우리학교 출판사 편집자 H입니다. 계절이 나가는 날들,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지요? 연휴의 끝에 다들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오셨길 바라요. 다행히 우리에겐 하루의 쉼이 더 남아 있습니다 :-)
오늘 편지는 열흘 전 세상에 나온 책 『괴물 부모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을이 막 도착한 지금, 강릉의 여름 바다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지난 8월 제가 강릉에 도착했을 때 낮 최고 기온은 37도였습니다. 해변의 모래가 너무 뜨거워 껑충껑충 뛸 수밖에 없었는데, 급히 뛰어든 바닷물은 가슴이 철렁할 만큼 차가웠습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찰나에 오가는 건 쉽지 않구나, 생각했어요.
그건 사흘간의 휴가가 끝나 서울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사들은 토요일마다 뜨거운 광장에 모였고, 저자인 김현수 선생님은 “책 출간을 서두릅시다.” 하시고는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야 농담처럼 ‘항암제가 스민 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출근길에 ‘치료제 부작용 탓인지... 진도를 많이 내진 못했습니다...’라는 톡을 받으면 선생님이 찍어 보내신 점 세 개가 마음을 콕콕콕 찌르던 날들이었습니다.
책 제목을 의논하는 편집회의에서는 조용하고 가만한 목소리만 오갔습니다. ‘괴물 부모’가 특정 개인을 비난하는 말이 아닌데도 그렇게 쓰일까 봐, 그럼에도 교실을 무너뜨리는 ‘괴물 부모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고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에, 여러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제목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묵직한 것을 삼키는 기분이 듭니다. 금세 식어버리지 않도록, 더 많이 이야기되도록 서둘러 보냅니다’
하시며 부탁드린 그날로 바로 원화를 보내주신 그림 작가님.
‘60자 안에 마음을 다 담기가 어려워’
밤새 추천사를 다섯 개나 써 보내주신 선생님.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는 것을 선뜻 허락해 주셨던 선생님들….
마감을 하루 앞둔 일요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고 ‘자료를 보내드린 익명의 교사입니다’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이야기 끝에 ‘이런 책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시는 선생님 목소리가 조금은 떨렸던 것 같아요. ‘네, 저도, 너무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제 목소리는 더 떨렸던 것 같아요. ‘뭐라도 해야지요.’ 하시며 마음을 보태 주셨던 많은 분들 덕분에 책이 늦지 않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강릉 바다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저는 그때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차가운 핫초코 같은 걸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원고를 매만지는 동안 차가운 사회문제를 다룬 교정지인데 왜 매번 읽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질까, 생각하다가 비로소 오래 잊고 있던 문장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해빙의 강과 얼음산 속을 오가며, 나는 살아있다.’ 기형도 시인의 문장이었습니다.
저에게 이 책은 그렇게 차가우면서 뜨거운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온도 차가 오늘의 문제들을 더 또렷이 만들어 주고, 그럴수록 저는 더 좋은 편집자가 되고 싶어집니다. 책을 받아보시면, 생각보다 책이 예뻐 조금 놀라실 거예요. 먹을 섞은 차분한 초록색 책장을 넘기면, 마음에 오래 남을 헌사도 만나실 거예요.
독자님이 이 책에서 어떤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실지 궁금합니다. 마침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들입니다. 『괴물 부모의 탄생』을 펼치는 독자님 마음의 온도를 생각하며 답장을 기다릴게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길요.
2023년 10월 5일
편집자 H 드림
격무로, 또 여러 부담과 아픔으로
목숨을 잃은 교사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부디 이 짧은 글이 괴물 부모 현상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제고하고 학교의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_김현수 |